그 소녀가 드디어 고백했다.
고백을 받은 그 남자도 설레는 눈빛으로 변했지만 끝내 차가운 얼굴로 소녀를 밀쳐냈다.
“난 네 삼촌이야. 딱 거기까지라고.”
이 광경을 본 한건우는 실소를 터트렸다.
“뻥 치시네. 가식적이야!”
버스가 울퉁불퉁한 흙길을 지나면서 끊임없이 흔들리자 한건우도 잠에서 깼다. 창밖을 내다보니 너무 깊게 잔 나머지 역을 지나버렸다.
화들짝 놀란 한건우는 다음 역에서 황급히 내렸다. 두 정거장은 거리가 멀어 한참 더 걸어가야만 했다.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한건우는 저도 몰래 좀전의 꿈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기억나는 장면이 얼마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맨 마지막에 내뱉었던 ‘뻥 치시네, 가식적이야!’라는 말을 제외하곤 아예 백지장이 돼버렸다.
그는 별안간 상실감에 휩싸였다. 대체 뭘 잊은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일 듯싶었다.
한 정거장을 넘어간 바람에 학교에 도착하자 어느덧 8시였다.
8인실 기숙사는 공간도 좁은 데다가 한여름이라 밤에도 찜통더위를 견뎌야만 했다. 게다가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휩쓸었다.
기숙사에 에어컨이 있지만 전기세가 아까워 아무도 안 켜고 그저 천장에 달린 낡은 선풍기만 윙윙거렸다.
한건우는 책을 좀 보다가 침대에 누웠다. 다시 꿈을 꾸면 버스에서 꿨던 꿈과 이어질 수 있을까?
그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그 소녀는 대체 누구일까?
한건우는 지금 잠들면 무조건 그 꿈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침 6시 30분, 한건우는 세안을 마치고 부랴부랴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나왔고 인파들 속에서 한 여자애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녀는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눴고 온몸에 풋풋한 학생 기운이 차 넘쳤다.
순간 한건우는 심장이 쿵쾅대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꿈속에서 그 소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잠에서 깬 이후에도 그 꿈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지만 눈앞의 여학생을 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메아리가 울렸다.
“저 사람이야! 바로 저 사람이었어!”
한편 룸메들은 그가 우두커니 그 여학생만 바라보자 어깨를 툭툭 치면서 웃었다.
“어쭈? 우리 한건우 씨 마음 설레게 한 상대가 나타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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