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넌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야박하다고? 그러는 넌? 나랑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진짜 진심으로 날 좋아해서 그랬던 거야? 가슴에 손 얹고 말해봐! 일말의 사심도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냐고?”
“우리 혼인 존속 기간에도 그래. 너 진짜 날 와이프로 생각하긴 했니? 네가 한 말들, 한 짓들을 되새겨봐. 친구라는 명의로 딴 여자랑 놀아난 것까지 말이야. 이 세상 모두가 날 야박하다고 삿대질할 순 있어도 박도하 넌 아니야. 그럴 자격 없어!”
그녀가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이자 박도하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는 결국 어떠한 반박도 못 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날 무려 4년이나 쫓아다녔고 결혼한 지도 3년이야! 그동안 내 품에 안겨서 딴 남자 심장 소리를 들을 때 단 한 번도 나한테 설렌 적 없어?”
차윤서는 더 이상 이 남자를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없어. 그때 넌 온 신경이 송이나였어. 내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나 있었을까? 이제 내가 물러났으니 소원 이룬 거 아니야? 송이나도 네 마음 받아주겠다고 했고 우린 이미 이혼한 상태야. 어서 송이나 찾아가야지 뭣 하러 여기까지 왔어?”
이 남자가 송이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한 차윤서한테 얼마나 무심한지 주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차윤서의 한결같은 마음만 믿고 습관처럼 그녀에게 비수를 꽂았으며 결혼 3년 만에 처음 시댁에 갔어도 시부모님이 대대로 물려받는 보물을 송이나에게 덥석 건넸다. 오죽하면 송이나가 대놓고 그녀에게 자랑질하며 실실 비꼬았을까?
차윤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박도하가 아니길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송이나는 제발 집어치워! 난 오직 너랑 함께하고 싶어. 우하준은 이미 죽었어. 심장을 이식받았다고 우하준이 되는 게 아니야. 전에는 내가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한 번만 기회를 줘. 싹 다 고치고 잘해줄게. 제발 날 버리지 마...”
이토록 나약하고 초췌한 박도하의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거만하기만 하던 이 남자가 한없이 비굴하게 그녀에게 애원하고 있다니.
예전의 박도하는 늘 높은 자리에서 모두를 지휘해왔고 그녀 앞에서도 차갑고 소외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오직 송이나한테만 자상하고 온화하게 대했다.
이 남자에겐 수많은 모습이 있지만 지금처럼 비굴하고 초라한 몰골은 절대 아니다. 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커피 타오라고 했잖아. 왜 우유야?”
그는 컵을 내려놓고 차윤서를 바라보며 다시 한 잔 타오라고 말하려던 참인데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좀 전에 이미 마셨잖아요. 대표님 컨디션을 고려해서 오늘은 더 마시면 안 됩니다.”
그제야 심장이 생각났던지 서주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전에 채용한 비서들은 그의 요구를 고분고분하게 들어줬을 뿐이다. 하긴, 상사의 요구에 토를 달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차윤서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그에게 ‘토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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