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늘은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결국 서지수가 들고 있는 캐리어에 시선을 멈췄다. 목소리에는 앳된 진지함이 배어 있었다.
“엄마, 캐리어는 왜 들고 있어요?”
서지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당장 떠오르는 핑계가 없었다.
“내 짐이야.”
진수혁이 대신 말하며 진하늘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차분히 설명했다.
“아빠가 며칠 동안 출장 다녀올 건데, 그동안 집에서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알겠지?”
진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진수혁은 아들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우리 하늘이 참 착하네.”
“저 이모는 누구예요?”
진하늘은 소유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비서야.”
진수혁은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꺼냈다.
“이따가 나랑 같이 출장 갈 거거든.”
서지수는 캐리어 손잡이를 꼭 쥐었지만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진수혁은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와 그녀가 들고 있던 캐리어를 가져갔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새에 서지수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목소리 또한 아주 다정했다.
“난 이제 가볼게. 보고 싶으면 전화해, 알았지?”
서지수는 속에서 올라오는 불쾌감을 꾹 삼키고 간신히 한 글자로 대답했다.
“응.”
“착하지.”
진수혁은 그녀의 귀 옆에 흩어진 잔머리를 부드럽게 정리해 주었다. 손가락이 귓바퀴를 따라 내려가더니 귓불 부근을 한 번 문질러 묘하게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빨리 가. 안 그러면 비행기 놓쳐.”
서지수는 퉁명스레 내쫓듯 말했다.
그때 갑자기 캐리어가 생각났다. 거기에는 그녀가 가장 자주 쓰는 신분증과 여권 등 중요한 서류가 전부 들어 있는데, 그걸 진수혁이 갖고 가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캐리어 언제 돌려줄 거야?]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한 시간쯤 뒤, 진수혁의 폰에 다른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이번에는 서지수가 아닌 진하늘에게서 온 음성 메시지였다.
“아빠, 오늘 집에 왔던 그 이모... 비서 아니죠?”
뜻밖의 내용에 진수혁은 잠깐 당황했다.
곧바로 답을 보내려다, 조금 전 아이에게 출장 간다고 거짓말했던 게 떠올랐다. 지금 답장해 버리면 비행 중이 아니라는 걸 들킬 테고, 그건 곧 거짓말을 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었다.
그러는 사이 서지수 쪽에서는 몇 시간이나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아예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자 뜻밖에도 휴대폰 너머 들려온 건 소유리의 목소리였다.
“수혁아, 나 씻고 나왔어.”
“먼저 방에 가서 쉬어. 난 전화 좀 받아야 해.”
진수혁은 낮고 부드러운 음성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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