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당신이었군.”
선우영은 여전히 흰 옷을 입고 있었고, 계단을 빠르게 올라 마지막 두 계단을 넘었다.
“본왕이 뒷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잘못 보지 않았네그려.”
“소첩 영친왕 전하를 뵙습니다.”
강희진이 살짝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인사했다.
“당신도 형님 폐하를 찾으러 온 건가?”
선우영은 강희진의 냉담한 표정을 무시한 듯, 마치 오랜 친구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어서재 문 앞까지 왔는데 황제를 보러 온 게 아니면 뭐 하러 왔겠어? 설마 심심해서 산책하러?'
눈썹 한 올 떨림 없는 표정 아래는 몇 번이고 이 남자의 뜬금없는 말에 억이 막힌 그녀였다.
“설마 이게 바로 어제 양 장군과 숙빈이 다투다가 형님 폐하 앞까지 간 그 궁녀인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선우영은 강희진 뒤의 궁녀에게 관심을 돌렸다.
강희진은 깜짝 놀랐다.
‘ 갓 밤샌 사이 어제 벌어진 일이 선우영 귀에까지 들어갔을 줄이야'
“그냥 평범한 꼬마 계집인데?”
선우영이 궁녀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오해하셨습니다. 그 계집은 지금 명광궁에 있습니다.”
강희진이 급히 핑계를 대었다.
‘다 강원주 때문이야. 별 걸로 일을 크게 만들어 놓고.'
선우영은 끈질긴 성격이라, 그의 관심을 끌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강희진이 강원주에 대한 혐오감은 이 순간에도 깊어져만 갔다..
“아쉽군.”
선우영이 매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양 장군은 정말이지 풍류를 모르는 사람인데, 그런 꼬마애 하나가 그를 형님 폐하 앞까지 데려가게 만들다니, 본왕도 그 계집의 진면목을 보고 싶군.”
“여느 계집 하나가 어떻게 전하께서 마음에 두실 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선우진의 길고 큰 그림자가 이내 그녀의 눈길을 가렸고, 무심한 실눈으로 선우영을 스쳐 지나가다 강희진에게 멈추며 약간의 의혹이 섞인 눈빛을 보냈다.
선우진의 시선을 느끼며 강희진이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선우진의 눈에 의혹이 더 깊어졌다.
“형님 퍠하.”
선우영이 무심하게 불렀다.
“짐이 방금 너희 둘이 문밖에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했는가?”
선우진의 목소리는 바람 없는 호수물처럼 평온했지만, 강희진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는 항상 무심한 듯 보이지만, 진짜로 화를 내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다.
선우진이 침대에서 얼마나 막무가내였는지 생각하니 강희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폐하, 소첩이 영친왕 전하께 계집애 몇 명을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우영의 말이 선우진의 의심을 살까 봐, 강희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선우진 곁에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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