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어서야 성유리는 할아버지의 의도를 이해했다.
“유리야, 많이 취했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가라. 진우와 한방에서 자, 아이는 내가 재울게...”
온화한 표정으로 성유리를 바라보는 박철용은 그들을 화해시키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성유리는 곁에 있는 남자를 흘끗 본 뒤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박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저 오늘 밤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가야 해요.”
“무슨 일이 아내보다 더 중요해? 오늘 밤은 어디도 가지 말고 유리를 돌봐. 저렇게 취했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해?”
고개를 들어 박철용을 바라보던 성유리는 의도치 않게 그 옆에 있는 박지훈을 보았다.
소파에 기대어 있는 박지훈은 팔꿈치를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유리는 시선을 돌려 박철용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저 혼자 잘 수 있어요. 게스트룸에서 자면 돼요.”
말을 마친 뒤 비틀거리며 일어나 2층으로 가려 했다.
“진우야, 빨리 따라가 봐.”
박철용의 목소리에 박진우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할아버지를 거역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성유리를 따라갔다.
뒤에서 누군가 날카로운 눈빛을 내뿜으며 그들이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훈아, 오늘 운전기사 데리고 왔니?”
시선을 돌려 아버지를 바라본 박지훈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손자 부부는 묵게 하고 나는 쫓아내는 거예요?”
“그런 뜻이 아니잖아. 너도 알다시피...”
가까이 다가온 박철용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방은 진우 방 바로 옆이잖아. 부부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혹시라도...”
뒤에서는 여전히 박진우의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유리, 문 열어!”
게스트룸을 지나가던 박지훈은 모든 게스트룸 문이 잠겨 있는 걸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박철용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정말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낭군은 무정하고 아내는 뜻이 없으니 이 불씨가 어떻게 타오르겠는가?
한편 방 안에 있는 성유리는 취한 듯 발코니 난간에 기대었다. 귓전에는 박진우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지만 일부러 못 들은 척하며 밖의 야경을 감상했다.
식사할 때 머리핀으로 머리를 올려 묶었더니 목덜미가 약간 시렸다.
머리를 풀려고 했지만 너무 세게 당긴 탓에 손에 있던 머리핀이 옆방 발코니로 튕겨 나갔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투명한 유리 난간 너머로 옆방 발코니에 떨어진 머리핀을 본 성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망설임 없이 난간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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