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두 번째 절기에는 때때로 폭우가 내린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박지훈은 종종 시간을 내어 채시아를 보러 왔는데 약을 먹은 후유증으로 채시아의 몸은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정신력은 훨씬 좋아져서 못 먹어도 억지로라도 더 먹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박지훈과 함께 있을 때 그녀는 윤성빈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왔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상처였고, 친구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채시아는 혼자 있을 때면 윤성빈의 연락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다시 이혼 얘기를 꺼내야 할까.
이날 채시아가 밖에서 장을 보고 막 돌아가려던 찰나 그녀의 앞에 한 인물이 나타났다.
임수아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긴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린 뒤 화려한 롱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시아 씨, 아주머니가 그쪽 안 죽은 거 알아요?”
임수아가 눈이 휘어지게 웃자 채시아는 여기서 그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은 조용한 카페를 찾아 창가에 앉았다.
폭우가 유리창 위로 쏟아졌다.
임수아는 마스크를 벗고 섬세한 얼굴을 드러냈다.
“걱정 마요. 도영이 말로는 채선우가 이 대표 돈을 갖고 이미 아주머니와 도망갔대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거예요.”
이미 박지훈이 전해준 얘기다. 최익순과 채선우는 그녀가 약속대로 이씨 가문에 시집가지 않아 보복당할까 봐 당황한 나머지 당일에 해외로 도망을 쳤다.
그렇게 잘나가던 채씨 가문이 고작 600억 때문에 이런 처지가 될 줄이야.
묵묵히 말을 들으면서 채시아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임수아의 시선이 그녀의 배로 향했다. 아직은 티가 나지 않았다.
채시아는 김예화가 결혼을 주선할 때 그녀를 구슬리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채씨 가문 딸만이 윤성빈과 어울리고 그녀를 친딸처럼 대하겠다면서...
문득 이런 식의 굴욕을 당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돈부터 가져오고 얘기해요.”
김예화가 돈을 주지 않을 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등 뒤로 임수아의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후회할 거예요.”
집으로 돌아온 채시아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가 전화 소리에 깼다.
전화를 받자 저쪽에서 윤성빈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네. 몇억을 원한다고? 며칠 사라진 사이에 그런 생각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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