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민이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채시아는 얇은 슬립 차림으로 온몸이 물에 젖은 채 욕실 한쪽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손이며 다리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곽태민은 재빨리 물을 잠그고 준비해 온 목욕가운을 꺼내 그녀에게 덮어 다 드러난 몸매를 가려줬다.
“괜찮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다소 컸지만 채시아에게는 멀고 희미하게만 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채시아는 정신을 조금 되찾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
“괜찮아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곽태민이 몸을 숙여 자신을 안아 올리려 하자 채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피하곤 입술을 꼭 깨물며 말했다.
“안 돼요.”
“도항시의 병원은 전부 신도영 그 사람이 간파하고 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제가 돌아온 걸 알고 있을 거고 제가 약을 먹었다는 걸 알게 되면... 곧장 윤성빈 씨한테 알릴 거예요.”
“윤성빈 씨를 준 술에 약이 들어간 걸 알게 되면... 앞으로 접근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질 거라고요.”
채시아는 마지막 남은 숨까지 끌어모아 겨우 말을 마쳤다.
4년 전, 그녀가 죽은 척했던 것도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는 박지훈의 치밀한 계획 덕분에 간신히 신도영을 속일 수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지금 박지훈은 곁에 없었다. 이 상태에서 병원에 가게 되면 그쪽 사람들은 틀림없이 신도영에게 바로 연락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채시아는 망설임 없이 처음부터 자기 손으로 해결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곽태민은 욕실에 들어오기 전, 거실 바닥에 쏟아진 와인과 깨진 잔을 이미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무슨 일을 시도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얼음 좀 가져다주세요.”
“네.”
곽태민은 주방 냉장고로 가 얼음을 꺼내 욕조에 부었다.
얼음이 욕조에 쏟아져 들어가자 뼛속까지 시린 냉기에 채시아의 열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고 곽태민은 다시 약상자를 챙겨왔다.
“고마워요.”
채시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곽태민은 대답하지 않고 욕실 문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러면서 박지훈에게 자신은 무사하다는 연락을 보냈다.
윤성빈은 결국 밤새 한숨도 못 잤다.
다음 날 아침, 잠을 설친 그는 일찍 출근했는데 허준이 평소처럼 업무 보고를 하고 있었다.
건성으로 듣고 있던 윤성빈은 이내 허준에게 물었다.
“채시아는 왔어?”
허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몸이 안 좋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출근 못 하셨다고...”
“몸이 안 좋다고?”
윤성빈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계속 주시해. 절대 놓치지 마.”
“알겠습니다.”
허준이 나가려던 순간, 맞은편에서 한껏 꾸민 임수아가 천천히 걸어왔다.
“허 비서님, 누구를 놓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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