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고아였던 채시아가 가장 싫어했던 건 바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것이었다.
신도영의 말은 그녀를 몇 년 전으로 되돌려놨다.
처음으로 그들 재벌 2세들 사이에 끼어보겠다며 발을 들였던 그날,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고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아직도 생생했다.
“내가 성빈 오빠 부인이 되고 나면 누가 감히 날 무시하겠어?”
...
임수아는 이번에도 채시아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아마 아직 모르는 듯했다.
한편, 신도영은 여전히 도항시의 구호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여태까지 채시아 께선 한 번도 밖에 안 나가셨어요.”
“제가 가서 문이라도 두드릴까요?”
경호원은 더는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신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서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어제 채시아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그는 믿기지 않을 만큼 들떴다.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예전 일들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예전에 자신이 채시아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떠올라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
전날 얼음물에 오래 몸을 담근 탓에, 채시아는 감기에 걸려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
걱정된 곽태민이 약을 사다 주었지만 먹어도 나을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긴소매 겉옷을 껴입고 전날 생긴 상처를 가린 채 집 밖으로 나섰다.
걷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싶어서였다. 한여름이건만 긴팔과 긴바지를 입은 그녀는 전혀 더운 기색도 없었다.
의사는 채시아에게 체질상 몸이 찬 편이니 조심하라고 했었으니 어젯밤은 정말 위험했다.
조금만 더 오래 있었더라면, 병원에 실려 갈 뻔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해선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중, 채시아는 가까운 거리에 정차해 있던 검정 밴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채시아가 그 차를 지나치려던 바로 그때, 신도영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시아야, 채시아.”
채시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이내 신도영을 보는 순간, 그녀는 제자리에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대답 없는 채시아에게 신도영이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정작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그날 신도영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연회에 꼭 오라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연회장에 도착했을 땐, 윤성빈은 없었고 재벌 2세 무리가 채시아를 조롱거리로 삼고 있었다.
한 잔, 또 한 잔. 붉은 와인이 그녀의 머리 위로 부어졌다.
그날 신도영은 가장 앞자리에 앉아 웃는 얼굴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치 악마 같았다.
심지어 가시에 찔린 생장미를 바닥에 잔뜩 깔아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청각 장애자 주제에 형수 소리 듣는 게 좋았나 보네? 그럼 이 위를 맨발로 세 발자국만 걸어봐.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네가 윤성빈 부인이라는 걸 인정하게 해줄게.”
그 말을 그때는 진심으로 믿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날의 고통과 수치, 그리고 공포가 다시 떠오르자 채시아는 신도영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억누른 분노를 담아 단호하게 말했다.
“저기요. 제가 대답하지 않는 건 못 들어서가 아니라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예요.”
신도영은 목이 턱 막힌 듯 아무 말도 못 했다.
의학은 물론 법학과 국제경영까지 두루 전공한 잘난 신도영은 그 순간 입을 꾹 다물고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 날 뭐라고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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