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혁은 서지수가 공포를 누르고 끝내 성공해 내는 과정을 지켜봤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그녀는 언젠가 지금의 모든 불편함을 스스로 극복하고 조용히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결말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아빠.”
진하늘이 할 말이 있어서 다가왔다가, 그가 서지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했다.
“오늘 같이 안 놀아서 삐졌어요?”
서지수가 고개를 들어 진수혁과 잔잔한 눈을 마주 봤다.
“그럴 수도.”
진수혁이 시선을 거두며 능청을 떨었다.
“달래 줄 거야?”
“싫어요.”
아이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오후 내내 서지수와 진하늘은 신나게 놀았다. 진수혁은 짐 들고 사진 찍어 주는 짐꾼 역할에 충실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뒤 진하늘은 행복감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자야 하는 시간이 되었지만 잠들기만 하면 진수혁이 분명 소유리를 보러 갈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밤 9시, 서지수가 진하늘을 재우고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진수혁에게 한마디 던졌다.
“하늘이 자니까, 이제 가.”
진수혁은 시계를 흘끗 봤다.
“오늘은 아직 안 끝났어.”
“...”
서지수는 말없이 소파 맞은편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아직 그려야 할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수혁의 시선이 등에 꽂히는 듯해 집중하기 어려웠다.
다시 한번 내쫓으려고 한 순간 진수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왜?”
그는 화면만 확인하고 무표정으로 받았다.
“내가 문자를 얼마나 보냈는지 알아? 왜 답장이 없어?”
“좀 이따 갈 거야.”
진수혁의 어조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좀 이따가 언제인데? 나 여기서 몇 번이나 남편 취급받았다고.”
진수혁은 얇은 입술을 열어 정확한 시간을 뚜렷이 말했다.
“12시.”
“...알았어.”
고준석은 체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난 12시까지만 버틴다. 12시 1분 넘기면 바로 갈 거니까 알아서 해.”
통화가 끝났다. 서지수는 진수혁이 낮부터 지금까지 소유리에게 가지 않은 이유는 진하늘과 한 약속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서지수는 손에 쥐고 있던 작업물을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말투는 한층 차분하고 멀었다.
“하늘이랑 약속 지켰으니까, 이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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