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혁이 얇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 냉기가 서린 목소리가 퍼졌다.
“사고로 입원했다면 돌봐주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네가 어떻게 병원에 들어갔는지 잊지 마.”
짧은 한마디에 소유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날 그녀는 서지수랑 진하늘 중 누구를 선택하겠냐며 진수혁을 시험하려고 일부러 사고를 냈다. 이후 그는 못마땅해했지만 정식으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네가 원한 생활을 마련해주고 돌봐주겠다는 약속도 지킬 거야.”
진수혁이 다시 규칙을 못 박았다. 이번에는 한치의 관용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은혜의 범위까지만이야.”
소유리는 입술을 꼭 깨물고 말을 삼켰다.
잠시 뒤 강현서가 부른 차가 도착했고, 두 사람은 함께 탔다.
차 안은 숨 막히듯 고요했다.
“앞으로 푸른 별장에는 안 올 거야?”
어색한 공기를 참지 못한 소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황 봐서.”
딱 세 글자. 그가 얼마나 냉정한지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소유리는 무언가 확인하고 싶었다.
“질문 하나만 해도 돼?”
“말해.”
희미한 기대가 실린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가 처음 만난 사람이 나라면, 그러니까 서지수가 아니라 내가 먼저였다면, 나도 서지수만큼 사랑받았을까?”
“?”
진수혁은 고개를 약간 기울여 그녀를 바라봤다.
“왜? 대답하기 어려워?”
“나는 5년 전에 서지수를 만났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시간 순서로 따지면, 먼저 만난 사람은 사실 너야.”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서지수를 극진히 사랑해 온 것처럼 보이지만, 친구들만 아는 사실이 있다. 서지수 역시 그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 말이다.
그녀의 사랑은 그보다 더 섬세해서 티끌 하나도 용납하지 못한다.
“내가 서지수만큼 널 사랑하지 못한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뭐야?”
소유리는 그가 자신을 전혀 모른다고 느꼈다.
“내가 너랑 결혼했다면 무엇이든 네 뜻에 맞출 거야. 매사에 네가 우선이 되겠지.”
진수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만약 지수가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면, 내가 결혼할 걸 알고서도 책임지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을 거야.”
소유리는 멍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미묘한 죄책감이 확 밀려 올라왔다.
“지수 마음은 네 마음보다 깨끗해.”
진수혁은 또렷하게 말을 뱉었다.
소유리는 이판사판이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수혁 씨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잖아. 결혼한 몸으로 나를 평생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얼마나 깨끗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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